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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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은 1995년 옴진리교 신도들이 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 가리야 기요시를 납치, 감금하고 살해한 사건이다. 옴진리교는 가리야 기요시의 여동생에게 거액의 헌금을 강요하고, 여동생이 옴진리교에서 탈출하여 오빠에게 피신하자, 아사하라 쇼코의 지시로 가리야 기요시를 납치하여 여동생의 행방을 찾으려 했다. 가리야 기요시는 고문 중 사망했고, 옴진리교는 시신을 소각하고 유골을 유기하여 증거를 인멸했다. 이 사건은 옴진리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촉발했고, 이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으로 이어졌다. 2011년에는 사건 관련자인 이노우에 요시히로가 새로운 증언을 하며 재조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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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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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개요 | |
사건명 | 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
일본어 명칭 | 目黒公証人役場事務長拉致監禁致死事件 (메구로코쇼닌야쿠바지무초라치칸킨치시지켄) |
발생일 | 1995년 2월 28일 |
발생 장소 | 일본 도쿄도 메구로구 |
용의자 | 오움진리교 |
목표 | 가리야 기요시 |
결과 | 가리야 기요시 사망 |
사건 상세 | |
원인 | 오움진리교 신도 탈퇴 시도 및 정보 유출 의혹 |
범행 수법 | 납치, 감금, 약물 투여 (수면제, 염화칼륨) |
사망 원인 | 약물 과다 투여로 인한 심장마비 |
관련 인물 | 가리야 기요시 (사망 피해자) 오움진리교 관계자 (용의자 및 가해자) |
법적 절차 | |
기소 | 오움진리교 간부 및 신도 다수 기소 |
판결 | 관련자들에게 징역형 선고 (일부 사형) |
배경 | |
관련 사건 | 오움진리교 관련 사건 사린 가스 테러 |
사회적 영향 | 오움진리교에 대한 사회적 비판 증가 및 감시 강화 |
2. 사건 배경
1993년 10월경, 가리야 기요시의 여동생(당시 62세)은 옴진리교에 입교하여 수천만 엔을 헌금하였다. 옴진리교는 여동생에게 그녀 소유의 메구로 공증인 사무소 건물과 토지(당시 시가 2.7억엔)까지 헌납하도록 강요했다. 이에 여동생은 옴진리교에서 탈출하여 오빠인 가리야 기요시에게 피신했다.
1995년 2월 28일 오후 4시 30분경, 도쿄도 시나가와구의 거리에서 옴진리교 신도들이 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 가리야 기요시를 납치하여 야마나시현 니시야쓰시로군 가미쿠이시키 촌(현 미나미쓰루군 후지카와구치코정)의 제2 사티안으로 끌고 갔다.
아사하라 쇼코는 여동생의 행방을 찾기 위해 가리야 기요시를 납치할 것을 지시했다.
3. 사건 발생
옴진리교는 가리야 기요시에게 마취제인 티오펜탈 나트륨을 투여하여 그의 여동생(옴진리교에 거액을 헌금하고 부동산을 헌납하도록 강요받다가 탈출하여 오빠에게 피신)의 행방을 알아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3월 1일, 아사하라 쇼코는 가리야 기요시를 살해하도록 지시했으나, 가리야 기요시는 이미 티오펜탈 나트륨 과다 투여로 사망한 상태였다. 옴진리교 신도들은 가리야 기요시의 시신을 마이크로웨이브를 응용한 소각로에서 소각하고 유골을 모토스 호에 유기하여 증거를 인멸했다.[3]
3. 1. 옴진리교의 범행 은폐 시도
1995년 3월 4일 이 사건이 알려지자, 옴진리교는 최초 보도 செய்த 아사히 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1] 그러나 다른 언론들도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3월 18일에는 '옴진리교에서 가리야 씨 구출 모임'이 주최한 1만여 명 규모의 집회가 열렸다.[1]
4. 사건 이후
1995년 3월 4일, 이 사건이 표면화되면서 옴진리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었다. 옴진리교는 처음으로 사건을 보도한 아사히 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다른 언론들도 잇따라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5] 3월 18일에는 '옴진리교에서 가리야 씨를 구출하는 모임' 주최로 1만여 명 규모의 집회가 열렸다.
3월 20일, 옴진리교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일으켜 일본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일본 경시청은 납치에 사용된 렌터카에서 옴진리교 신도 마쓰모토 고의 지문과 피해자의 혈흔 등을 발견하여, 이 사건을 옴진리교의 범죄 혐의를 확정적으로 인식한 최초의 사건으로 간주했다.[5]
경시청은 3월 22일 옴진리교 본부에 대한 강제 수사를 결정했지만, 옴진리교는 이보다 앞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일으켰다.
가리야 기요시의 동생은 "형이 옴진리교를 척결하기 위해 희생되었다"는 식의 미담으로 여겨지는 것에 불쾌감을 표명했다.[7]
4. 1. 이노우에 요시히로의 새로운 증언
2011년 여름, 사건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인 이노우에 요시히로는 관계자를 통해 가리야 기요시 사무장의 장남에게 가리야의 사인이 마취약 부작용이 아니라, 당시 의사였던 공범자가 고의로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알렸다.[8] 그러나 수사기관은 특별히 대응하지 않았다.이노우에의 새로운 주장은 "1995년 3월 1일 오전 11시경 나카가와가 이다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하러 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무장이 사망한 당일은 폭설이었고, 이다가 조쿠에 도착한 시각으로 미루어 볼 때 그것은 불가능하며, 나카가와의 증언에 허위가 있다"는 것이었다.[9] 그러나 나카가와 토모마사 등 의사 및 다른 공범자들은 이노우에의 주장을 부정했다. 이노우에가 사건 발생으로부터 16년 이상 지나 스스로의 과거 증언 및 진술을 뒤집은 점도 있어, 수사기관의 마취약 부작용에 의한 사망이라는 인정은 바뀌지 않았다.[10]
이노우에가 새로운 주장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사 공범자가 이노우에와 무관하게 피해자를 살해했다면 피해자에 대한 이노우에의 책임은 가벼워지므로, 재심 청구가 목적이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11][12]
5. 재판 및 처벌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포함한 다수의 신도들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이들은 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1]
재판 결과, 아사하라 쇼코는 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1] 이노우에 요시히로, 엔도 세이이치 등 다른 신도들도 사형, 무기징역 등의 중형을 선고받았다.[1]
6. 관련 자료
에가와 쇼코가 1995년 7월 30일에 분게이슌주에서 출판한 《「옴진리교」추적 2200일》(ISBN 978-4-16-350580-0)
참조
[1]
문서
諜報省がレンタルビデオ店に信者を送り込み免許証情報を盗み、230万円する高級プリンターで作成していた。
[2]
서적
「オウム法廷」連続傍聴記
[3]
웹사이트
松本智津夫被告 法廷詳報告 林郁夫被告公判
http://www.cnet-sc.n[...]
[4]
서적
オウム法廷―グルのしもべたち〈上〉
朝日新聞社
1998
[5]
문서
松本は過去に信者集めを目的に尾崎豊の偽装後援会のビラを電柱に貼ったことによる東京都屋外広告物条例違反での逮捕歴があり、その時の指紋採取記録と一致した。
[6]
블로그
警視庁には6人だったのか?―オウム信者さん
https://web.archive.[...]
[7]
서적
オウム死刑囚 魂の遍歴
[8]
뉴스
オウム高橋克也容疑者を逮捕 逃亡生活17年 地下鉄サリンなど関与の疑い
https://www.nikkei.c[...]
2012-06-15
[9]
서적
オウム死刑囚 魂の遍歴
[10]
뉴스
井上死刑囚の新証言認めず
2014-03-08
[11]
뉴스
「19年前の命題、今も~再開したオウム裁判に期待する」
http://news.tv-asahi[...]
2014-02-12
[12]
뉴스
「(被害者名)さんは殺害」なぜ今 井上死刑囚 再審請求 準備中
201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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